• 국문초록
여말선초 문학사를 기술할 때 기본 구도가 되는 ‘절의파’와 ‘역성혁명파’의 대비는 매우 유효한 방법이며 이는 조선전기 문학사의 ‘사림파’와 ‘관각파’의 구도로도 연결된다. 그런데 이 구도는 사대부들의 ‘隱居’와 ‘出仕’를 너무 단절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절의’와 ‘혁명’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면모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기우자 이행과 같은 중요한 인물이 아직도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못한 주된 원인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기우자는 ‘신진사대부’라고 할 수 있지만 특정한 정파에 얽매이지 않고 매사 소신에 따라 처신했다는 점에 그의 특별한 점이 있다. 기우자는 기울어가는 고려의 개혁을 위해 혁명파와 한편으로는 협력하고 한편으로는 견제하는 노선을 걸었다. 역성혁명에는 반대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켰지만, 태종이 즉위한 이후 고려의 충신들이 대거 등용될 때 그도 조선왕조에 출사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물러날 때라고 판단되면 즉시 물러나는 처신을 보였다. 그의 삶은 사대부로서 세상에 대한 책무도 온전히 수행하면서 자신의 삶도 잘 지켜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기우자의 삶은 ‘處士’와 ‘大夫’ 두 측면을 적절히 아울러야 하는 ‘사대부’ 본연의 존재 조건을 충실히 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그의 시문학을 ‘출’과 ‘처’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은거의 삶이 그의 출사에 도움을 주고, 반대로 출사가 그의 은거에 도움을 주는 상호 보완의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고의 논의는 ‘출’과 ‘처’를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방법론의 정립에 도움을 줌으로써 여말선초 문인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사대부 일반의 사상과 문학을 새롭게 이해하는 단초를 여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 기우자, 이행, 여말선초, 절의파, 혁명파, 성석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