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본 논문은 스리모노(摺物)에 포착된 대상의 물성과 질감을 강조하는 각종 기법들, 즉 제작과 감상 과정 모두에서 사람들의 감각을 총동원하게 하는 표현 방식에 주목하여, 그 구체적인 특징과 의미를 다각도로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찍어낸 것 혹은 찍혀진 것이라는 의미의 일본어 스리모노(摺物)는 에도 후기 사적으로 주문 제작된 목판화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에도시대 크게 유행하며 대중적으로 유통 및 판매되었던 상업적 판화 우키요에(浮世絵)와 달리, 개인이나 문인 그룹의 사적인 의뢰를 통해 주문 제작되어, 상업적인 네트워크 밖에서 유통되었다. 다색판화에 금・은・황동 등 다양한 재료뿐만 아니라, 표면에 질감과 입체감을 드러내는 정교한 기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본고에서는 스리모노의 전성기이자 그 세부 기법이 최고조에 달한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제작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 특징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판화에서 “시각적 촉각성” 혹은 “촉지적 시각성”이 강조되는 맥락을 1) 텍스트, 이미지 및 기법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2) 문인(시인), 에시(絵師 화가), 호리시(彫師 각공), 스리시(摺師 판공) 간 협업이 이루어지는 스리모노의 제작 및 주문 과정 속에서, 3) 스리모노의 배포(선물)와 소유 및 감상의 유희적 측면에서 살펴본다. 이를 통해, 스리모노에서 확인되는 다양한 디자인과 정교한 기법들은, 그림의 주문과 제작・소비를 둘러싸고 에도 후기 성장한 도시민들의 지적・문화적 유희성이 극대화된 결과물이자, 그림을 주문한 후원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장치이자 사람들과 관계맺는 방식 중 하나였음을 논의한다.
주제어 : 스리모노(摺物), 우키요에, 판화, 물성, 감각, 촉각, 에도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