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본 연구는 중국 내의 조선인들이 자신의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아리랑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떤 변화와 관련하여 재창작되었는지 역사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 시기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직후까지 한정하였다. 기존의 문헌 자료를 근거로 2015년 6월 18일부터 25일까지 중국 연변 연길시, 용정시, 도문시, 안도현 일대에서 필자가 현지 답사하고 채록한 아리랑과 인터뷰 자료를 보충하였다.
중국의 조선인들은 ‘국적’과 ‘민족’이 길항하는 사이에서, 아리랑이라는 문화적 기제를 통해 민족을 상상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생성해 왔다. 중국 조선족 아리랑의 역사는 민족 정체성의 구성 및 정서체계에 영향을 주는 두 가지의 계열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그 기원을 1920년대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인 「본조아리랑」에 두고, 이후 조선 민족의 이산과 유랑, 중국으로의 이주와 정착이라는 역사적 고난과 연결되는 아리랑 계열이다. 또 하나는 광복 이전에 화북지역 조선의용군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렸던 「기쁨의 아리랑」 계열로, 1945년 광복을 거쳐 1950년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중국 조선족의 주체적인 역량과 현실 감각을 표현하고 있다.
「기쁨의 아리랑」은 고향과 고국을 떠나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랑하던 고난의 서사를 환기한다. 이런 고난과 죽음의 위협에도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생의 의지와 미래로의 企投를 멈추지 않았고 혁명투쟁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탄식과 죽음의 고개’가 ‘기쁨과 승리의 아리랑 고개’로 전환된다. 이들이 「기쁨의 아리랑」을 부르며 꿈꾸었던 “새 나라”는 바로 “태극기”-“무궁화”-“삼천리”로 표상되는 조선이었다. 그런데 광복 후에 토지개혁으로 땅을 획득하고 이어 중화인민공화국 건설과 함께 「기쁨의 아리랑」은 ‘조선’을 연상시키는 4절을 노랫말에서 배제하게 된다.
또한, 중국에서 조선 민족이 독자적으로 새 터전을 이루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희망과 포부를 새로운 국면과 형식에 맞춰 「새 아리랑」으로 창작하여 공연하였다. 「기쁨의 아리랑」과 「새 아리랑」은 조선 민족이면서 중국 공민으로서의 주권과 주체성, 독자적 고유성이 편입되거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 조선인들의 ‘피눈물’과 연대, 혁명적 이상, 헌신적인 항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에서 아리랑의 창작과 전승을 통해 ‘조선인’으로서 과거의 역사적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고, 또한 ‘조선족’으로서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생성하며 ‘건설적’ 주체로서 자신을 정립하려는 기획을 드러내고 있다.
주제어 : 조선족, 아리랑, 기쁨의 아리랑, 새 아리랑, 민족 정체성, 디아스포라, 조선의용군, 토지개혁, 연변조선족자치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