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조선 후기 화가 휴당 이계호(1754~1833)는 오세창의 《근역서화징》(1928년) 이래 현재까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포도그림 화가로 잘못 알려져 왔다. 이러한 오류는 오세창이 휴당의 자제글 중 乙酉(1825년)를 乙酉(1645년)로 오역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04년 使行 연구자 최강현에 의해 이계호의 한글 《연행록》(1793년)이 번역・출간되어 휴당 이계호가 조선 후기 인물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미술사학계에서는 이 오류가 수정되지 않고 있다. 이계호 생애에 대한 100년간의 오류는 오세창의 誤記 이후 후학자들이 이 기록을 고증없이 반복적으로 복사해 사용했던 실수도 있었지만 조선 중기화풍으로 그려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야포도도〉를 이계호 작품으로 비정하면서 더욱 어긋났다. 이 작품에는 이계호가 제작했다는 단서가 없음에도 조선 중기 양식이라는 이유로 이계호 작품으로 둔갑했고 이후 백년동안 관서가 있는 이계호 眞品들과 어색하게 공존하면서 조선 포도화의 계보가 뒤틀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일성록》 등의 문헌 고증을 통해 그의 생애를 바로잡고 조선 포도화의 도상과 유형을 분석해 이계호 포도도의 성격과 특징을 도출해 조선 후기 대표적 포도화가로서의 위상을 정립시켰다. 즉 이계호는 포도도를 군자화로 인식하여 水墨 위주로 그렸던 전대의 화법을 계승하면서도 다자다손과 복락의 상징인 ‘萬代’를 뜻하는 ‘全樹式 포도도 병풍’의 제작방식을 애용하고 사실적 표현수법인 ‘葡萄汁’ 기법을 유행시켜 ‘휴당화풍’을 진작시켰다. 특히 그의 기년작 3점은 모두 70대 작이며 유존작은 모두 능숙한 필치로 제작되어 대부분의 작품이 후반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계호의 찰방지인 공주와 지척인 가까운 전북지역의 포도도 화가인 최석환, 서병우, 강봉훈 등의 포도화와 휴당화풍과의 관련성도 살펴 보았다.
주제어 : 휴당 이계호(休堂 李繼祜), 포도그림(葡萄圖), 병풍(屛風), 연행록(燕行錄), 찰방(察訪), 공주(公州), 전북(全北), 길상(吉祥), 다람쥐[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