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이 논문은 신위(1769~1847)와 청 문단의 교유 양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신위는 1812년 진주 겸 주청 사행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가서 당대 문단의 종장이던 翁方綱과 그의 아들 翁樹崐을 만나 깊은 교분을 맺었으며, 옹방강의 서재를 방문하여 옹방강 문하의 葉志詵, 王汝翰, 朱鶴年 등과도 교유하였다. 신위는 추사 김정희의 뒤를 이어 북경 학예의 중심에 있던 문사들과 교류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향후 조・청 양국의 인적 교류망이 확장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1812년 연행 이후 신위는 沈象奎, 韓致應, 洪義浩, 朴宗薰, 南尙敎, 申在植 등 연행을 떠나는 지인들을 적극 활용하여 북경 문단의 최신 동향을 입수하는 한편, 서신과 시문을 통해서 옹방강의 제자 吳嵩梁을 비롯하여 蔣詩, 錢林, 陳文述, 熊昻碧, 陳用光, 鄧傳密, 周達, 張深 등과 교분을 맺었다. 이들과의 교유는 1820년대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신위의 교류망이 확대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은 장시이다. 신위는 장시를 매개로 전림, 웅앙벽, 진문술 등과 교분을 맺은 것으로 파악된다.
1830~1840년대에는 주로 역관 李尙迪을 통해서 儀克中, 韓韻海, 端木國瑚, 王鴻 등에게 시문을 지어 보내며 간접적으로 교유하였다. 신위는 북경 문단과의 소통의 최전선에 서서 조선의 문예 수준을 청 문단에 전파하는 역할을 자처하였다. 동시에 자신의 주변 문인들을 북경의 벗들에게 소개함으로써 대청 교류망을 확장해나갔다. 신위의 연행은 노론 경화세족뿐만 아니라 주변의 소론・남인계 문인들과 중인층 시인들이 북경 문단과 소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주제어 : 申緯, 翁方綱, 翁樹崐, 吳嵩梁, 蔣詩, 陳文述, 錢林, 熊昻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