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이 글은 요~금대 張氏 가계 인물의 사회적 행적과 수대에 걸친 통혼의 사회사적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관찬 자료, 묘지, 금석문 기록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그 결과 장호 가계의 先代는 늦어도 요대 전・중기 이후 사로에 나아가 대를 이어 봉직하면서 점차 가계를 키워냈음을 확인하였다. 그간 연구가 미진했던 (장호의 아들) 張汝爲와 張汝猷의 관력과 행적도 검토하였는데, 일전에 알려진 것보다 다양한 관력과 행적을 확인하였다. 장씨 가계 성원들의 불교 신행에 대해서도 검토를 진행하였는데, 장행원-장호 부자 모두 死後 불교 도량에 모셔진 점, 장호의 형과 여형제가 모두 출가하여 승려가 된 사실, 장호가 승려를 극진히 禮遇한 사실, 아들 장여위가 남긴 기록들을 통해 장씨 가계가 요~금대의 독실한 불교 신자였음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장씨 가계 구성원들의 통혼 상대를 전수 검토하여 그들의 통혼 상대가 (일방향의) 한 부류(族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당시 장씨 가계가 족속을 가리지 않고 사회 상층부 인사들과 교류 및 통혼한 것은 가세와 명망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소산으로 추정된다. 동시에 이러한 결과물은 장씨 가계의 구성원들이 수대에 걸쳐 왕조와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주제어 : 「游靈巖寺題記」, 「張汝猷墓誌」, 遼代渤海人, 金代渤海人, 장씨 가계의 통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