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이 글은 일본어로 쓰여진 장혁주의 한국전쟁 관련 텍스트들, 특히 《아, 조선》(1952)과 《무궁화》(1954)를 당대 한국과 일본 양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교차하며 읽어내려는 시도이다. 전쟁이 벌어진 바로 그 실시간대에 장혁주가 한국과 일본을 두 차례 오가며 쓴, 당시로선 매우 예외적인 한일 간 越境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 텍스트들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글에서는 장혁주의 한국전쟁 텍스트들이 견지하는 거의 일관된 특징으로, ‘중립’의 감각을 제시했다. 우선 한국(어)의 맥락에서 볼 때, 중립이란 남한이나 북한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보기 드문 ‘객관적인’ 입장에 해당된다. 《아, 조선》에서 중립의 입장은 북한 뿐 아니라 남한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부패한 실상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며, 《무궁화》의 경우 남과 북의 대립을 지양했던 해방기 이래 ‘중간파’ 정치인 집안의 몰락을 애도하는 방식으로 드러났다. 이 모든 재현은 한국 정부의 검열에서 자유로운, 일본어 글쓰기와 일본 매체 출판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가능한 성취였다.
그러나 일본(어)의 맥락에서 보자면 장혁주 텍스트의 ‘중립’이란 실은 전혀 다른 지평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이 글에서는 장혁주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중립의 태도가 조선의 전쟁에 결코 휘말리지 않겠다는 당시 일본 사회의 주류적인 평화 담론의 맥락 속에서 독해되어야 한다고 파악하였다. 물론, 일본 사회의 평화론은 평화헌법을 수호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의의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평화국가라는 일본의 자기 표상이란, 사실상 ‘기지국가’로서 대규모 인원을 한국전쟁에 참전시킨 현실을 누락시킬 때 비로소 성립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 장혁주의 텍스트는 한국의 전장을 직접 목격한 후에 쓰여졌지만, 당시 일본의 전쟁 연루 양상은 말끔히 삭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장혁주의 한국전쟁 텍스트들은 ‘강 건너 불’이라는 대중적인 인식 차원의 朝鮮戰爭, 즉 ‘朝鮮=戰場’, ‘日本=平和’라는, 일본 사회의 주류적인 담론 분할을 깊숙이 내면화하거나 혹은 이러한 인식을 보다 심화시킨 경우에 해당된다.
주제어 : 장혁주, 한국전쟁, 일본, 평화, 기지국가, 참전, 《아, 조선》, 《무궁화》, 전시중립, 중립화, 중립주의, 홋타 요시에, 재일조선인, 샌프란시스코 조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