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초록
厚齋 金榦(1646~1732)은 조선 후기 경학, 성리학, 예학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학 자이다. 朴世采의 고제로 南溪 학맥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宋時烈과 학 문적으로 교류하였다. 그가 문집에 남긴 경학 관련 저술은 그의 학문적 성과와 당대 학자들과 주고받은 영향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태극도설차기」로 시작된 일 련의 箚記類 저술은 주목할 만한 자료이다. 젊은 시절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경서 읽 기에 침잠한 10년간의 공부가 집약된 결과물로, 당시 학계의 주자 관련 서적의 읽기 방법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태극도설」을 읽은 시기에 대해 「연보」와 김간 본인의 기록에 차이가 있는데, 이것 은 남계와 우암 중 누구를 먼저 만났는지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학문적 전환의 계기를 제공한 쪽이 누구인지와 관련지을 수 있는 만큼, 김간의 행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노론과 소론의 문인들이 각각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서술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지 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김간의 본격적인 학문 행보가 바 로 「태극도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의 읽기는 곧 「 태극도설차기」 저술로 이어지는데, 「태극도설차기」는 차기류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 에 쓰여진 것으로, 그 구성과 저술 방식은 뒤이은 일련의 차기류 저술을 선도했을 뿐만 아니라 향후 그의 경학과 성리학의 학문 방향에 중요한 기초가 된다.
김간의 「태극도설」 읽기와 정리는 17세기 조선의 젊은 학자들의 형이상학적인 탐 구와 직결되어 있다. 이들의 태극에 대한 견해 차이는 주자 문헌 공부의 심화와 함께 조선 성리학의 분파를 형성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居敬 공부의 실천 방법론으로 『소학』을 중시했던 박세채의 학문적 궤적과 그 시작점이 다 른 듯 보이나, 김간은 「태극도설」 읽기의 기반 위에 『소학』을 비롯하여 『사서대전』 읽기 방법론을 구축하면서 주자학 문헌의 광범위한 검토와 조선 학자의 견해를 정리 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김간의 「태극도설」의 이해는 김간 경학의 시작점이라 할 만하다.
주제어
김간, 박세채, 송시열, 태극도설, 태극도설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