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일제강점기 조선사회에 유입되어 포교를 전개했던 교파신도는 모두 11개 교파였다. 그 가운데 그나마 토착화에 성공한 교단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天理敎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천리교의 조선 내 토착화는 근대 천리교 본부와 지도부에서 의도했던 ‘세계 보편종교’의 방향이 해외포교를 통해 실행된 결과물일까? 아니면 그들이 주장해 왔던 조선포교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천리교적 종교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신앙의 토착화로 이어진 것일까? 본고는 이러한 천리교의 ‘토착화’를 화두로 일제강점기 천리교에서 의도한 조선포교의 방향과 실제 포교의 양상이 어떠한 간극을 보이는 가운데 조선인 포교를 실행해 왔는지 그 실상을 찾아보고자 하는 작업이었다.
결과적으로 일제강점기 천리교가 조선사회에서 다른 교파신도에 비해 가장 많은 조선인 신자를 포교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일본 정부에 의해 비근대적 의료행위로서 ‘비문명’으로 규정했던 ‘치병’이었다는 점, 이에 대해 오히려 천리교의 조선포교에 있어 가장 큰 장애가 된 것은 천리교 지도부와 조선총독부가 천리교를 세계 보편종교로 정립하기 위해 내세운 사해동포의 ‘동화’ 논리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제어 : 일제강점기, 천리교, 토착화, 교파신도, 조선포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