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국립중앙박물관에 ‘전김시필 산수풍속도’라는 표제로 함께 수장되어 있는 27점의 채색 산수인물도 중에는 9점의 사녀도가 포함되어 있다. 수목과 괴석이 배치된 잘 다듬어진 정원에서 편지를 쓰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혹은 어린 아들을 돌보는 여성을 그린 그림들로서 다채로운 채색과 금니를 사용하여 정교하게 그린 작품들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 구성과 공간감, 그리고 비수차가 큰 필선의 사용 등이 조선 중기 절파 화풍의 소경산수인물화 유형을 띠고 있어서 제작 시기는 17세기로 추정되는 작품들이다. 이는 현존하는 사녀도 중 시기가 가장 이르고, 한 화가에 의해 아홉 점이 일괄로 제작된 세트로서 다양한 도상의 仕女像을 보여주는 귀중한 회화 자료이다.
이들 사녀도의 도상을 검토해보면 그림 속 여인은 떠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 원망을 품고 있다. 주제 및 회화 양식에 있어서 중국 宋代에 발달했던 閨怨을 주제로 한 사녀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표현 양식에 있어서는 명대에 유행한 미인도 양식을 보인다. 명 중기 구영의 미인도가 17세기에 조선에 전래되었음은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화풍에 있어서도 깊은 관련성을 살필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사녀도가 아름다운 여성의 용모를 담아내어 성적 매력을 대상화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군자로서 ‘성색을 멀리해야한다’는 절제의 준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조선의 선비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상하였을까. 이에 조선의 문사들이 사녀도 감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웠던 이유를 짚어보았다. 첫째, 歲畵이기에 완상하였고, 둘째, 故事圖로서 감계의 효능을 지녔기에 완상하였으며, 셋째, 중국으로부터 입수된 대가의 명품이기에 완상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9점의 사녀도의 제작과 감상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들 작품은 宮怨詩를 시각화한 송대 사녀도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명말 臨宋人畵帖의 제작 및 유행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채색사녀도를 ‘고전적 미인도의 재현’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 사녀도, 미인도, 채녀도, 閨怨, 仇英, 宋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