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논어》의 첫 번째 편인 학이편에는 ‘有子曰’로 시작되는 내용이 세 차례 등장한다. 과거 공자의 제자인 유자 즉 유약의 말로 간단히 간주해 왔지만, 그러기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남는다. 특히 유자라는 인물과 관련해 전해지는 전국시대에서 한대에 이르는 자료를 참조하면 그 의문은 더욱 증폭된다. 필자는 먼저 통가자의 분화 과정에서 ‘有子曰’이 ‘又子曰’ 로 이해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어법상의 문제가 남기는 하지만, 한대의 名儒들조차 ‘有子曰’을 ‘孔子曰’로 읽었다면 그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결국 현행본과 같이 ‘有子曰’로 정착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당시 적지 않은 자들이 이를 有子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사기》 「중니제자열전」에서 사마천이 선택한 서사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1)有子를 공자의 제자 열전 중 맨 뒤편에 배치할 뿐 아니라 字를 누락하는 방식으로 ‘有子曰’에 대한 의심을 드러내었다. (2)하지만 일단 《논어》에 ‘有子曰’이라고 기록되었고 이를 당시 적지 않은 사람이 공자가 아니라 有若의 말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소개했다. (3)그렇다고 이를 도저히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에 반증을 제시하며 그 자료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사마천도 ‘有子曰’을 ‘又子曰’로 읽거나 또 한대 유가들과 마찬가지로 ‘有子曰’을 ‘孔子曰’로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마천은 ‘有子曰’로 읽는 당시 주류의 독법을 일방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일단 당시 유행했던 독법을 소개한 뒤 그것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던지는 방식을 사용했다.
주제어 : 사마천, 사기, 논어, 유자, 통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