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문초록
조선시대 서화 전통의 맥은 전라북도 근대 서화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전북 지역에 서화로 이름난 인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石亭 李定稷(1841~1910)은 마땅히 그림을 배울 스승을 찾지 못해 독학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 ‘藝鄕’으로 전라북도를 꼽게 된 것은, 이정직이 그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고자 이정직을 찾아왔고, 그렇게 점점 커진 물결은 근대 전북 화단을 만들었다.
彛堂 趙秉憲(1876-1938)은 김제 출신으로, 이정직의 제자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왔지만, 다른 제자들에 비해 생애에 대해 알려진 기록이 많지 않고 현전하는 작품도 거의 없어,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서화가다. 족보와 관련 기록을 통해, 서울로 올라가 서화가들과 官界 인물들과 교유를 했고 느즈막히 고향 김제로 내려와 聲慶廟 參奉에 제수되었다는 점 정도가 알려져 있었다.
본고에서는 집안에 전래되어 온 유물들을 통해 전북을 넘어서 서울화단까지 이르는 조병헌 일가의 교유관계를 확인하고, 조병헌이 서예와 묵죽에 특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소장내력이 확인되는 유물들이라는 점에서 유물 자체가 가지는 미술사적 의미를 넘어서 시공간적으로 서로 관계맺음 속에서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컬렉션 전체를 통해 조병헌과 조송 부자의 서화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전북 예술사의 큰 흐름에서 한 조각 비어있던 부분인 조병헌을 찾아내어 퍼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주제어 : 이정직, 조병헌, 조송, 김제, 전북 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