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集類 - 增補 明南樓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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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6-01
增補 明南樓叢書
한국 역사상 최고의 저술가인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 1803~1877)를 두고 학계(學界)에서는‘실 학사상과 개화사상의 가교자(架橋者)’라고 칭하고 있다.
최한기는 연암(燕巖), 다산(茶山) 등 18세기 실학자들의 사상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개화사상(開化思想)에 연결시키는 교량적 역할을 수행했던 19세기의 대표적 실학자이다. 특히 북 경에서 수입된 서양과학에 관한 지식을 흡수하여, 기존의 중세적 언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한 면에서, 그의 사상사적 위치는 너무나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최한기는 서울 도성에 거주하면서 연구와 저술로 칠십 평생을 일관하면서도, 당대의 정치적 문화 적 주류와는 거의 소통하지 않는 채, 오직 외곬의 학인(學人)으로서 삶을 살았다. 그런 까닭에 그 가 사유한 전모는 그의 방대한 저술 속에 고스란히 담기게 되었다.
지난 1971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는 혜강의 저술과 편찬에 속한 방대한 책들을 수집 편차하여 [명남루총서(明南樓叢書)] 5책을 출판한 바 있었다. 이것은 혜강의 학적(學的) 유산(遺 産)을 최초로 정리 간행한 것으로 학계(學界)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그러다가 1999년 혜강의 종손가(宗孫家)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되었다. 혜강 연구에 관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된 것이다. 그 책들 중에는 혜강의 문집 초고에 해당하는 것(惠岡雜藁 ),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소모(素謨)] [승순사무(承順事務)] [향약추인(鄕約抽人)], 그의 아들 최병대(崔炳大)의 수기(手記)[최병대난필수록(崔柄大亂筆隨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신발 굴 자료를 통해 혜강학의 전모를 파악할 길이 열린 것이고, 특히 혜강의 인간적 면모와 생활의 실제 에 접근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이에 대동문화연구원에서는 기존의 [명남루총서]에다 증보(增補)라는 두 글자를 붙쳐, 혜강의 글 을 다시금 총집성(總集成)하는 일을 기획하였다. 그런데 혜강의 종손가에서 나온 초고본은 책의 파 손이 심하고, 편차가 정리되어 있지 않아, 그대로 영인할 경우 내용 파악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형 편이었다.
이에 대동문화연구원에서는 새로 발견된 난삽한 초고를 재정리하고, 활자로 조판하였다. 기획에서 부터 출간까지 3년여의 시간이 소요된 결과, 현재까지 알려진 20여종의 편저(編著)가 [增補 明南樓 叢書] 5책 속에 총집성(總集成)된 것이다.